알지도 못하는 규칙을 따르라고?

평론 2016. 10. 15. 11:43


취업 포털에서 채용공고를 보다 보면 '급여: 회사내규에 따름'이라는 근무조건을 자주 접하게 된다.

여기서 '회사내규'라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93조에 따라 상시근로자수 10인 이상인 사업장에서 의무적으로 작성하게 되어 있는 '취업규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회사내규에 따른다는 것은 회사가 만들어놓은 급여 규칙에 따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번째로는, 당신이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의 취업규칙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영공시가 되어 있고 회사 홈페이지에 취업규칙을 게재하지 않는 한 '아직은' 외부인인 구직자가 취업규칙을 알기란 거의 불가능이다.

두 번째로는, 취업규칙에는 당신이 받아야 할 임금액수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93조의 2에는 '임금의 결정·계산·지급 방법, 임금의 산정기간·지급시기 및 승급(昇給)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게 되어 있다. 당신이 얼마를 받을지는 사측과의 근로계약에서 정하는 것이지 공개적인 장소에 비치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한(근로기준법 제14조) 취업규칙에는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당신의 연봉에 대한 회사내규 따위는 없다. 지원할 회사가 10인 미만 규모라면 이는 더욱 확실하다. 취업규칙 작성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회사내규를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이 얼마를 받을지 정보를 알려주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그래야 대등해야 할 노사관계에서 당신을 조금이나마 더 불리하게 만들고, 당신을 저렴한 가격으로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크레딧잡'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회사의 평균 연봉뿐만 아니라 월별 입사자 및 퇴사자 수 파악까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다만 3인이상 기업만 조회가능하며, 정보를 공개하길 거부하는 기업도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나쁘면서도 좋은 소식

평론 2016. 1. 3. 15:38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가끔 주인공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하나씩 가져와서 풀어놓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현실에서는 다르다. 그것은 올해를 정점으로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는 소식이다. 바꾸어 말하면 일할 사람이 점점 적어진다는 것이다.

고령사화와 맞물린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일하는 사람들이 부담해야 하는 돈이 늘어남을 뜻한다. 동시에 정부에서도 세입 감소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담뱃세 인상과 같은 잔머리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이 외에도 우리가 겪게 될 변화는 많겠지마 여기까지가 나쁜 소식이다.

그러면 좋은 소식은 무엇일까. 바로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급여와 좀 더 나은 처우 위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회사에서 뽑을 수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 테니까. 인적자원만이 풍부했던 한국은 중소기업, 비정규직, 감정노동 등 말도 안되는 조건에서 정말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되었다. 노동시간은 최고인데 근속기간은 최저였다. 기업이나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에 위한 개선은 아니라는 점이지만 노동조건 개선의 여지는 기대해볼만 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인건비 절감을 부르짖는 기업들의 속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단순노무직이나 서비스직에 이어 가능하기만 하다면 사무직이나 전문직 인력도 수입하려 할 것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비록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한국인만큼 한국어가 잘 통하고 눈치 빠르고 일 잘하고 알아서 늦게까지 일해주는 민족이 없다. 지금 기회가 있을때 기업과 정부는 한 사람의 노동자를 소중히 여기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연습을 시작하기 바란다.

소유주는 어디가고 오너만 남았나

평론 2014. 3. 3. 20:15

어느 때 부터인가 신문을 읽다 보면, 재벌기업의 총수와 그 일가를 ‘오너(owner)’라고 일컫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소유주’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왜 굳이 영어를 쓰는 것인가?

우선, 영어를 대신 쓰게 됨으로써 얻는 이점을 간과할 수 없다. 같은 말이라도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욱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모국어가 아니므로 한 번에 뜻이 와닿지 않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를 쓰든 영어를 쓰든, 기업에 소유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오너’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왜냐하면 법인기업에는 주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그의 책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법인기업’이라는 것이 법에 의하여 인격체로서 인정받은 기업을 말하는 것이고, 사람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개인기업은 당연히 주인이 있을 수 있고, 모든 재벌기업이 법인이므로 이는 논란거리가 못 된다).

시민들이 바로 보아야 한다. 왜 언론들이 ‘오너(owner)’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지. 그리고 왜 재벌 총수들이 1~2%의 지분으로 법인기업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지.